
추모와 공경의 문화 격몽요걸에서 율곡 이이는 차례나 제사의 목적을 화와 경에 두고 있다. 화는 가족의 화합이다. 차례나 제사는 가족의 화합과 조화를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있다. 또한 경을 중시함으로써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 없이 형식적으로 치르는 제사는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 즉 차례나 제사의 본질은 후손들이 화합하여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다. 그런데 제사 본래의 목적을 잃은 결과가 명절 후유증이나 가족 간의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차례나 제사에는 명시적 기능과 잠재적 기능이 있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음식을 차리고 온 가족이 모여서 조상을 기리는 제사 드리는 형식이 명시적 기능이라면, 자손들 간의 화와 경은 잠재적 기능이다. 제사를 지내는 장소라든가 음식의 종류, 제사 순서 등 형..

상례, 죽은 이에 대한 애통 취임식에 임하는 대통령의 첫 공식 일정은 순국선열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 참배이다. 조국에 헌신했던 선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앞 세대에 대한 감사는 그들의 순국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다. 국내뿐 아니다. 외국 순방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 나라의 국립묘지를 찾아 추모하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지도자가 보여주는 이와 같은 추모의 모습은 앞 시대를 계승하고 성실한 일처리를 기대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상징적 효과가 있다. 모든 문화권에서 보인 이러한 의식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는 공자의 제자 가운데 가장 듬직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인 증자의 짧은 한마디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대학의 저자로 알려지기..

관례, 어른의 시작 일상과 현실을 중시하는 유교에서 예는 삶의 전반에 걸쳐 있다. 그 중에서도 관, 혼, 상, 제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매듭짓는 통과의례였다. 오늘날 치러지는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추도식은 전통 시대의 관례, 혼례, 상례, 제례와 다를 바 없다. 성인식이나 결혼식은 그 의식을 통해 주어진 삶을 소중히 살아가려는 마음을 다짐한다. 장례식이나 추도식은 그 의식을 통해 망자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다하고 생전의 고인을 추억하며 기린다. 예나 지금이나 형식은 변했어도 삶의 중요한 과정마다 자리한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전통적인 관례는 15세~20세 전후에 실시했다. 남자가 머리에 관을 쓰는 관례를 치렀다면, 여자는 머리에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했다. 관례나 계례는 단순히 나이가 찼기에 어른..

주고받는 공경과 자유의 경지 그렇다면 몸과 마음을 일관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몸과 마음이 수양이 필요하다. 지하철에서 서 있는 어른을 보게 되면, 피곤하더라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맹자는 이것을 본성에 따른 선한 마음, 즉 사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피곤하기 때문에 자는 척을 하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못 본 척하기도 한다. 주자는 이것을 선한 마음이 기질에 의해 가려지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선한 본성이 제대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가리려고 하는 기질의 작용을 끊임없이 막고 닦아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경이다. 즉 공경은 몸과 마음에 일관되게 나타나 외적으로는 구체적인 예절로 드러나고, 내적으로는 선한 본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하는 노력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 공자는 시경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사특함이란 개인적인 욕심으로 인해 사회와의 관계를 배제하고 단절시키려는 생각이다. 그런데 현존하는 시경을 살펴보면 300여 편의 시 가운데 연인과의 애정을 노래하거나 상대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내용이 80편 이상이 된다. 이것은 사특함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공자가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고 평가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시경을 배우는 목적과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개인의 욕망에 치우친 사특함은 부조화를 일으킨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적인 생각을 표출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위해를 끼치고, 이것은 결국 관계의 단절을 불러일으킨다. '시'는 뜻이 지향하는 것이니, 마음에 있을 때에는 '지'가 되고 말로..

둘이자 하나, 하나이자 둘 예와 음악은 예의 범주에서 보면 하나이고, 성향으로 구분하자면 질서와 조화라는 둘로 구분된다. 따라서 예와 음악은 본래는 같은 것인데 성향에 따라 구분하여 예와 악으로 부르는 것이다. 즉 질서와 조화 역시 둘로 구분되지만,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에서는 동시에 구현되므로 결국 하나이다. 기야, 너에게 전악이라는 관직을 명하니, 학생들을 가르쳐서 정직하면서도 온화하고, 관대하면서도 장엄하며, 강직하되 잔학함이 없도록 하고, 간략하고 평이하게 하되 오만함이 없도록 하라. 요임금의 뒤를 이어 천자가 된 순임금은 음악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정직하면서도 온화하게 할 것을 강조했다. 정직하다는 것은 바르고 강직하다는 뜻이다. 즉 사회의 규범인 원칙을 지키고 고수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음악 교육을 통해 조화를 엿보다 예의 항목에 있어서 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악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는 음악 전반을 뜻한다. 공자는 음악을 매우 좋아했다. 제나라에서 소악을 듣고 감흥에 젖어 3개월 동안 고기 맛을 알지 못할 정도였고,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할 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부르게 한 뒤 화답하기도 했다. 또 노년에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되돌아온 이후 음악을 정돈하여 바로잡았다. 공자가 음악을 중시했던 이유는 음악이 갖는 조화로움 때문이다. 즉 조화라는 덕목을 익히고 실천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교화되고 사회가 안정된다고 여겼다. 고대의 예를 기록한 예기의 기록에 따르면,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교과목을 제시한다. 불과 가을에는 예와 음악..

마음이 몸을, 몸이 마음을!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인 구사는 동작 하나하나에 담겨야 할 바람직한 자세를 말한다. 명료한 인식, 공평한 이해, 온화한 심성, 공손한 태도, 진실한 대화, 신중한 일처리, 절실한 질문, 후환의 대비, 의로움의 추구 등이다. 이는 배움을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참다운 유학자들이 지닌 삶의 지침이기도 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예절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예부터 할아버지 수염을 뽑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손자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예쁜 손자라도 천방지축 날뛰면 부담스럽기 마렵이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손자는 만나면 반갑고, 떠나면 더 반갑다고 한다. 가족 간에도 꼭 지켜야 할 기본예절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의범절은 몰랐을 때는 상관없는데 알면 알수록 부담스럽게 ..

마음, 도화지의 흰 바탕 논어를 읽다보면 공자의 놀라운 예지와 지혜도 돋보이지만 제자들의 날카로운 질문 또한 보통이 아니다. '회사후소' 역시 그렇다. 자하는 '회사후소'를 통해 겉으로 드러난 것이 본질적인 아름다움은 아니지 않냐고 묻는다. 예의 본질이 외적 꾸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통찰이다. 오히려 화려한 외형을 감추려는 마음에서 진정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군자는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그 위에 가벼운 홑옷을 걸쳐 입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은근히 퍼져가는 난초 향처럼 담백하면서도 싫증나지 않는 속 깊은 자신의 향기를 풍긴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기 광고가 중시된다. 작은 일도 확대하고 부풀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드러내고 자랑한다. 그러나 허장성세와 달리 실제 능력이..

예를 알지 못하면 처신할 수 없다. 태묘는 노나라 시조인 주공을 모신 사당으로 천자의 예를 행하는 곳이다. 예 전문가인 공자가 그곳에 가니 사람들은 알아서 척척 예를 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공자는 일일이 묻곤 했다. 공자의 행동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공자가 중시한 것은 예와 정성, 그리고 조화였다. 그 때문에 제사를 주관하는 자에게 일일이 물어 공경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이처럼 예는 다른 사람과 하나 되기 위한 행위이며 인이 외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공자는 인의 실현을 위해 예를 강조했고 맹자는 예를 인의와 더불어 인간 본성의 하나로 규정했다. 특히 순자는 예를 매우 중시했다. 그는 예의 기원을 사회질서를 위한 성인의 가르침이라고 파악한다. 순자에 의하면 사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