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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악사상

예를 알지 못하면 처신할 수 없다.

태묘는 노나라 시조인 주공을 모신 사당으로 천자의 예를 행하는 곳이다. 예 전문가인 공자가 그곳에 가니 사람들은 알아서 척척 예를 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공자는 일일이 묻곤 했다. 공자의 행동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공자가 중시한 것은 예와 정성, 그리고 조화였다. 그 때문에 제사를 주관하는 자에게 일일이 물어 공경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이처럼 예는 다른 사람과 하나 되기 위한 행위이며 인이 외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공자는 인의 실현을 위해 예를 강조했고 맹자는 예를 인의와 더불어 인간 본성의 하나로 규정했다. 특히 순자는 예를 매우 중시했다. 그는 예의 기원을 사회질서를 위한 성인의 가르침이라고 파악한다. 순자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타고난 욕구와 욕망이 있는 반면 재화는 한정되어 있다. 당연히 사함들은 싸워서라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 한다. 그 결과 사회는 혼란하고 각박해진다. 이 때문에 선왕이 예의를 제정해서 각자의 직분을 설정하고, 인간의 욕망을 조절하여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즉 선왕이 제정한 예법은 욕망의 충돌을 막아서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수단이다. 유가의 특징인 예는 당시 묵가나 법가의 바판 대상이기도 했다. 특히 겸애와 근검, 노동을 강조한 묵가는 장기간 상복을 입는 유가의 상례를 죽은 사람을 위해서 산 사람을 해치는 번잡한 풍습이라 비판했다. 20세기 초 노신 역시 광인일기에서 유학을 '사람 잡아먹는 예교주의'라고 공격했다. 이는 후대에 예의 정신이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껍데기 허례에 대한 비판이다. 

사회관계의 내비게이션

공자는 예로써 자신을 확립할 것을 강조했다. 예를 배우지 못하면 인간관계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유가의 예 형식은 때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복잡하다. 하지만 그러한 형식이 오히려 편안하기도 하다. 공적인 자리에서 상석을 어디에 배치할지 어른 앞에서 손을 어떻게 하고 시선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하다.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 모르면 실수한다. 상황에 맞는 예의 형식이 필요한 이유다. "예가 없으면 안내자 없는 장님이요, 촛불 없는 캄캄한 방과 같다. 우리의 손과 발, 귀와 눈을 어디에도 둘 수 없다." 참 적절한 비유다. 예는 이렇게 어색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해준다. 예는 낯선 관계 속에서 품위를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예가 없으면 사회적 동물로서 지켜야 할 사람다움 또한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한편 정치에도 공자는 법치보다 예치를 강조했다. 이는 춘추시대에 만연한 사회질서의 붕괴 원인을 예의 상실로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노나라의 실질적인 권력자인 계씨는 신분이 대부였다. 그런데도 자신의 뜨락에서 천자를 상징하는 예악인 팔일무를 추게 했다. 팔일무는 가로 8줄, 세로 8줄로 64명의 무용수가 문과 무를 상징하는 무구를 들고 추는 춤이다. 일무는 신분계급이 내려갈수록 춤추는 무용수의 수가 줄어든다. 팔일무로 자신의 막강한 지위와 권력을 드러낸 것이다. 공자는 대부가 천자의 춤을 추는 무엄한 일을 거리낌 없이 범한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라고 탄식한다. 역설적이게도 팔일무를 춘 계씨의 행위를 개탄하던 공자는 먼 훗날 팔일무의 예악으로 제사를 받는다. '대성지성 문선왕'이란 성인의 자격으로. 공자는 당시 예의 형식이 무너지는 것뿐 아니라 예의 본질이 상실되는 것도 안타까워했다. 제자인 자공이 초하룻날 조상의 사당에서 양을 희생으로 쓰던 곡삭의 예를 없애려고 했다. 유가의 전통은 자연의 절기에 따라 초하루와 보름을 소중히 여긴다. 매년 섣달에 천자는 제후들에게 다음해 달력을 나눠주는데, 제후들은 달력을 받아 일단 조상의 사당에 보관한다. 그러다 초하룻날이 되면 양을 잡아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달력을 꺼내 백성들에게 반포하였다. 이것을 곡삭의 예라고 한다. 당시 달력을 시행하는 것은 천자를 높이고 조상을 높이는 큰 예로 중요한 행사였다. 그런데 문공 때부터 군주는 참여하지 않고 희생양만 바치는 형식적인 행사가 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자공은 실용적인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그 제도를 폐지하려고 했다. 애꿎은 양만 희생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예의 본질을 생각하지 못하는 제자가 안타까웠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까워하느냐? 나는 잊혀져가는 그 예를 아까워한다." 공자는 예의 정신은 사라지고 본래 형식은 없어졌더라도 양을 바치는 곡삭의 예가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양을 바치는 형식만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예는 기억되어 언젠가 예에 담긴 정신을 복구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공자는 곡삭의 예를 없애려는 자공이 안타까웠다. 공자가 중시한 것은 한 마리의 양이 아니다. 예의 본질이다. 예의 본래 정신을 살려내면 무너진 사회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 그게 공자의 통찰이다.

예와 악

공자의 시대는 예뿐 아니라 음악 또한 문란하고 지나치게 화려했다. 예는 공경을 잃어버렸고 악은 조화를 상실했다. 공자는 예와 악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겉치레만 추구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예다, 예다 말하지만 옥과 페백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악이다. 악이다 말하지만 종과 북을 일컫는 것이겠는가?" 공자는 예와 악을 별도로 나누기도 하지만, 예와 악을 한데 묶어 설명하기도 한다. 예가 사회생활의 차례와 등급을 정한 것이라면 악은 그 차례와 등급을 조화롭게 만든다. 따라서 예와 악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공자는 옥과 폐백을 주고받는 형식적인 겉치레를 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종과 북의 연주를 음악이라 여기지 않았다. 외형도 필요하지만 실질이 부족한 것은 예와 악의 근본정신과 거리가 있다고 보았다.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와 악을 본래성을 소중히 여기는 공자의 생각이 읽혀진다. 이러한 생각은 '회사후소'라는 명언으로 압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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