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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사상가의 사진

의로운 정치, 무대에 서다

맹자가 볼 때 두 무리는 가족과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는 주범들이다. 양주는 자기만 행복하면 그만이었다. 터럭 한 올을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해도 하지 않았다. 남이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다. 그에게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은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이들 무리에게는 개인 윤리나 사회 및 국가 공동체의 공공 윤리 등은 속박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임금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나 국가를 부정하기 때문에 '임금이 없는 사상'이다. 한편 묵자는 누구나 똑같이 사랑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이마를 갈아서 발꿈치에 이르더라도 천하에 이로우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겸애를 외치며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그런데 나의 부모와 남의 부모,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은 친친에 기초한 가족윤리를 부정하는, 가족공동체의 파괴를 의미한다. 맹자가 '아버지가 없는 사상'이라고 규정한 이유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애인은 나의 부모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제쳐두고 남의 부모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본말과 선후를 명확히 구분하여 매 순간 경건하게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본심대로 먼저 자신의 부모와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 이 마음을 이웃에게로 넓혀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차등적 사랑의 실제이다. 그 출발이 친친에 있다. 이렇게 볼 때 본심에 의거하면 천하에 쉬운 것이 정치이다. 정치적 기교와 해박한 지식, 국정운영 능력, 외교적 대범함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 돼야 할 것은 부모와 자식이 사랑하는 그 마음을 국가에까지 펼쳐서 굳세게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 구성원을 자신처럼 여겨야 한다. 그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고, 올바른 존재가 되도록 하며, 배려하고 공감하며, 옳고 그른 것을 가려서 사람다운 세상을 이루는 것, 이것이 사람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를 위해 늘 자신을 돌아보고 닦아야 하낟. 다산이 "군자의 학문이란 자신을 닦는 수신이 절반이요, 절반은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이다." 라고 한 것 역시 윗사람의 수신이 정치의 바탕임을 말한 것이다. 수신을 통해 확립한 어진 마음으로 미루어 백성을 다스리는 것, 군자가 평생 짊어져야 할 사명이다.

 

덕으로 세상을 지휘하다

금성옥진. 맹자는 공자의 삶이 오케스트라의 음악처럼 지극히 조화롭고 아름답다고 찬탄했다. 쇠 소리와 함께 시작된 연주가옥 소리로 마무리되기까지, 각각의 악기가 모여 조화를 이루듯, 공자의 삶이 그러했다. 떠나야 할 때는 떠나고 머물러야 할 때는 머물렀으며, 벼슬해야 할 때는 벼슬을 하고, 숨어야 할 때는 숨는 등 때에 맞게 시의적절하게 행동하였다. 맹자가 공자의 삶을 음악이 조화를 이루어 완전한 것처럼 집대성이라고 높였던 이유이다. 음악은 강퍅한 마음도 조화롭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1975년, 기나긴 내전으로 들리는 거라곤 총소리뿐이던 베네수엘라. 어느 허름한 도시에 총 대신 악기를 들고 운명과 싸운 기적의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11명의 아이로 시작된 단원은 2015년 400여 개가 넘는 센터에서 70만 명이 넘는 아동청소년 음악수련생이 꿈을 꾸는 곳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 태어나 세상을 감동시켰다. 오케스트라의 경험은 아이들이 자기 자리에서 바르게 행동하고 남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다. 음악 하나로 아이들은 기적을 만났고, 삶 전체가 바뀌는 체험을 했다. 음악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부분과 전체를 어우러지게 한다. 백여 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하나의 곡을 조화롭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지휘자에게 달려 있다. 만일 몇몇의 악기에만 집중하거나 자기 감정에 빠져 흐름을 놓치면 듣기 싦은 소음일 뿐, 선하고 조화로운 소리를 낼 수 없다. 연주자들 역시 지휘자의 사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연주의 디테일을 살려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지휘자든 연주자든 자신의 위치에서 바르게 행동하고 전체를 돌아볼 때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정치도 오케스트라처럼 세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이상적인 정치를 '덕치'라고 한다. 공자는 "정치는 덕으로 이끌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덕은 내면에 내재된 인의예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임금이 자신을 닦아서 덕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은 마음으로 복종한다. 임금이 백성을 품어주고 솔선수범하여 모범이 될 때 백성들 또한 제 역할을 하기에 나라는 저절로 다스려진다.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고 수많은 별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되는 것과 같다. 

이처럼 덕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임금 혼자만 덕을 확립하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다. 덕치는 위정자뿐만 아니라 덕으로 교화된 백성들 역시 내면의 도덕에 의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신뢰사회가 구축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공자는 말한다. 제도와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는 사람들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한다.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 부정한 행위를 하고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 걸리면 재수 없고, 성공하면 운수대통이다. 공자의 진단은 놀랍게도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무리 완벽한 정치제도일지라도 제도는 다양한 문제를 낳는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4년 혹은 5년마다 자신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인을 선출하여 그에게 권한을 위임한다. 그런데 선거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과연 선거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된다. 문제점을 직시하고 제도의 개선을 통해 보완하고 있지만, 제도의 한계는 여전히 노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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